.
2024. 6. 10. 05:05

 

 

 

 

 

 

 

 

 


 호그와트 기숙사엔 여학생 층과 남학생 층이 나뉘어 있고, 그 중 남학생은 여학생 층에 갈 수 없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이 학교가 세워진게 몇 년인데, 기숙사를 보살피는 그림들이 보기에 얼마나 10대 청년들의 행동거지가 못마땅했는지가 뻔히 보이는 대목이지.
지극히 합리적인 처우라고 몽블랑 체리 슈는 생각했다, 나이를 좀 먹고 학생회장이 되고부터는 본인이 직접 다른 쪽 기숙사로 가려는 인간들을 잡아낼 수 있게 된 데에 감사한다. (더불어 기숙사는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여학생이 남학생 층으로 가려 드는 행동은 묘하게도 잡지 않았던 탓에. 이 부분에 있어 '교칙 위반은 아니지만 왜 굳이 오려 드는가'는 논리로 본인이 보이는 대로 혼은 냈다. 물론 그의 묘한 컨트롤 프릭성 행동 탓에 슬리데린 반장에게 묘한 시선을 받기는 했다.)


위의 건을 더해 10대 청년이란 으레 사랑이니 연애니 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양 보였다, 이를테면 이선 타운젠드의 연애점은 그가 예언 마법에 본격적으로 재능이 싹텄을 무렵부터 여러 학생들에게 인기를 누렸던가. 저학년 시절엔 정답률이 그리 높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도, 그저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관련한 약간의 조언을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인다는 양 수업 사이사이의 쉬는 시간에 주먹을 꽈악 쥐고 그에게 찾아가는 모습은 과연 이 학교의 흔한 광경이었다.

'오, 블랑슈. 너를 좋아한다고 점 쳐달라 한 사람도 있었어.' 하고 카드를 섞으며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나는 곧장 대꾸했던가. 필요 없습니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성적도 괜찮은, 몹시도 완벽한 슬리데린 소속의 순혈 학생회장. 적당히 선망하며 롤모델 삼기에 괜찮은 제물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나를 좋아한다고 해두면 여러가지 곤란한 일에선 벗어나기 쉽겠지. ...정도의 생각, 완벽히 꾸며낸 꼴이라면 그야 좋아할 만도 하지만 속내까지 까보면 좋았다가도 다 깨겠지 싶으니 진짜라고 상정하지도 않는 모습.
왜 그래? 누구는 진짜 좋아할 수도 있잖아. 왜, 너도 연애점 한 번 쳐 줄까? 아니 됐다니까. 상대도 없어요. 손사레나 치며 거절했더니 그는 내 허리를 쿡쿡 찌르기나 했던가. 청춘이 너무 각박하다, 블랑슈. 쪼끔은 즐기고 살어.

"즐기긴 무슨..."

 

저라면 저 같은 사람 싫었을 겁니다, 태연히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눈곱만큼도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발렌타인 즈음의 시즌엔 어김없이 아모텐시아에 관한 사건사고가 터졌던가.
5학년의 학생이 4학년의 내 동급생에게 간식을 선물로 주면서 그 안에 아모텐시아를 섞었다던가 하는 제보를 들었을 때엔 정말이지... 단숨에 피가 차갑게 식는 감각까지도 느껴졌다. 미친 거 아냐? 엄밀히는 교칙 위반은 아니라느니, 학생들이 합법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약을 쓰는건 머글 사회의 법률로 쳐도 불법이진 않다느니 하는 판단이 내 사감보다 앞섰기에. '상대의 허가 없이 약물 처방을 했다'는 명목에 집중해, 처벌을 바라는 피해자가 있을 때에 손을 써서 사과를 받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시의 내 최선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하지? 나름의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인 셈 치는 건가, 저...걸 이 카테고리에 넣어도 되나? 10대 청년들을 못마땅히 여긴 기숙사 분들의 안목은 현명했다 싶었다. 이 과정에서 증거품 삼아 회수한 아모텐시아 약병이 몇 개나 되는지는 세지도 않았다, 그 무엇도 내 사유 삼지 않고 전부 교수님께 제출드렸으니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난 모른다.

 

 

"사랑, 사랑. 그 놈의 사랑..."

 

살면서 봐온, 서로를 정말 사랑하는 것 같기는 하다는 확신이 서는 사람을 제 양친밖엔 보지 못했다. (물론, 이건 그가 애시당초 그의 양친 외의 타인에겐 모조리 색안경을 끼고 봐왔다는 것과 타인의 사랑 사정까지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만큼 상냥하진 않았단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변절하거나 헤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가끔 결혼 기념일 날짜를 둘이 같이 잊고 서로 다른 봉사활동을 가서는 평소처럼 연락을 주고받으며 천진히 웃기나 하는 부분에선 다시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 결혼 기념일은 결국 내가 부친께 언급 드렸고, 부친은 살짝 놀라더니 뒤늦게 모친께 연락을 넣었다. 당시의 편지에 모친에의 낯부끄러운 칭찬의 문구가 그득히 적혀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정작 모친도 같이 까먹었던 모양이라 큰일로 퍼지진 않았으니 다행일까.

 

 

미련하기 짝이 없는 제 양친의 꼴을 회상하고는 다시금 앓는 소리를 낸다.

상대가 없어 못 살 정도는 아닌데도 서로가 삶에 있어 필요불가결하다는게 대체 뭐지, 저 두 문장이 같은 뜻이 아닐 수 있단 말인가? 약간의 표기법 차이만이 있는 비슷한 두 문장을 대어 놓고 들여다 보았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지인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가정으로써 서로를 얽히게 하였을까.

이 모든 의문을 그저 강렬한 사랑만으로 완전히 해소할 수 있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을 만병 통치약인 셈 치는 속 편한 전개는 그에겐 용납되지 못했다.

 

 




'요즘 꽤 바빠 보이십니다?"

 

나이 스물 둘쯤 먹었을 무렵, 일 하러 간다 그러며 집을 나서려던 유니스에게 나지막히 그런 말을 건넸다. 등에 진 커다란 첼로를 잠깐 툭 놓쳐버린 그는, 그저 언제나대로 열심히 첼로 일을 하러 갈 뿐일 셈인데도 유난스레 이 말에 뭔가 찔리기라도 한 양 바보같은 웃음 소리를 새었다.

 

"그, 그럼요! 이야! 바쁘다 그죠! 선생님께서 빨리 와보라 하셨어요! 헤헤!"

"첼로 일로?"

"물론이죠! 그거 말고 뭐가 있다고! 리, 릴리도 차암~"

 

네에, 그런 설정이시라고. 떨군 첼로를 다시 수습하며 제법 곤란해하는 그를 그저 흐뭇하게 웃음지으며 보기나 한다.

확실히 슬슬 대회 준비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기던가요? 네, 네! 그거에요 그거. 상대가 괜히 곤란해하지 않도록 말을 맞춰주는 것도 더했다. 유니스 정도 성정에 몽블랑 정도 눈치가 있으면 그야 상대가 최근 첼로 말고 다른 활동도 하고 있단 것은 충분히 알 범짓 하지 않나, 사실 몽블랑이 아니어도 알 만 하다. 그라면 알파성 기사단에 소속되느냐, 소속되지 못 하느냐 두 가지 길밖엔 없다는 것이 자명하니까.

 

몽블랑 체리 슈는 어느 쪽이냐 하면 이런 전쟁판에 괜히 발을 들이지 말기로 하였기에 그를 돕거나 할 방법은 없었다, 다만 그저 배웅의 인사 정도는 가능했기 때문에.

나간다고 나름 정리했을 머리가 망가질까 제법 조심히 상대를 쓰담는다. 슬슬 머리채를 긁다가, 슬쩍 손을 내려 볼 언저리를 얕게 덮기나 했다. 날도 더웠고 상대도 놀란 탓에 꽤 열기를 띄고 있었다.

 

"슬슬 다녀오세요, 몸 조심 하시고.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네, 네!"

"저녁으로는 아까 말씀하신 스튜를...... 노력은 해 볼게요, 저녁 때에 맞춰 오신다면 말이죠."

 

첼로 연습에 가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과장스런 배웅 인사와 함께 그는 헐레벌떡 집을 떠났고.

그 뒷모습이 사라질때까지 멀거니 보던 나는 그제서야 등을 돌렸다. 자, 이제 일을 합시다. 제 방 책상에 올려두었던 양피지 더미와 책을 모조리 챙기고서 그는 상대보다 조금 늦게 집을 나서 집 바로 옆의 보육원 까사로 향했다.

 

 

 

보육원 겸 헤드헌터 집무실이 있는 까사는 마법 사회 쪽에 위치했으나, 머글 사회와는 건물 한개밖엔 떨어지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까사 바로 옆의 사탕가게 문을 지나기만 해도 머글 사회로 갈 수 있었으니까.

원래도 그는 호그와트에서의 교육으로 머글 사회의 존재를 이해하며 이곳에의 공부를 계속 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긴 했으나, 사실 정말로 여기로 하기로 한 이유는 다짜고짜 홀몸으로 선생 한 명만 믿고 머글 사회로 나가려 들었던 상대를 붙잡아두기 위한 것이 컸다. 이사를 고려하던 사람에겐 이 정도 편의를 봐주는건 딱히 과한 일이 아니니까. 덕분에 그를 잡아둘 명분으로써 여지껏 잘 기능했단 생각은 든다.

 

그렇지만 아예 그가 기사단 일에 전념하게 되거나 첼로 일로 바빠지기 시작하면... 그때엔 정말 내 집에서 오갈 여력이 없길 할 텐데, 그것만이 요만큼의 걱정이다.

아무튼 그는 집이 비는 것이 싫었다, 싫어지고 말았다. 사고의 건을 뒤로 하고서라도 학창시절 4학년 즈음부터 시작된 아침 인사와 저녁 인사는 어언 8년째 이어지고 있었고 그 혼자서는 정하기도 힘든 식사 메뉴를 함께 고민한 지도 5년째였다. 사소한 생필품 정도는 가끔가다 바꿔 쓰기도 하는 이 일상에 이제는 아예 녹아들어 놨거늘 이제 와서 방이라도 빼면 나만 아쉬울 일이 아닌가. 기왕이면 처음 집에 발을 들인 채로 쭉 계속 살아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그 집을 채울 수 있는 존재라면 딱히 상대가 아니어도 괜찮았던가?

그건 아니었다, 애시당초 그의 집에 허울없이 들일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적기는 하다만 한명 정도 집으라면 그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상대를 집을 수 있었다.

뭐, 이유로써 몇 가지 대자면... 서로에 대해 꽤나 잘 아는 사이이니 편하다는 것과, 집에서 잘 안 나가고 머물러 줄 것 같다는 것... 정도를 당장 말로 댈 수 있겠고. 언제나대로의 과한 노력과 부족한 결과이다, 그가 이런 불합리한 짓을 자처할 때엔 거의 항상 양심의 가책이라던가 의리, 친애 등등의 감정적 사유를 감춘 경우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뭐, 언제나대로의 제 팔자 제가 꼬는 그런 거죠."

 

스스로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행동을 이제는 이 정도 변명으로 적당히 덮고 넘기는 데에 그는 몹시도 능숙해졌다. 그러니까, 자신의 욕구나 감정이 바라는 바는 따로 있지만 이를 이성적으로 납득하지 못할 때에... 은근스레 빌미를 만들어다 주면 냉큼 빌미대로 행동해 바라는 바를 이뤄 버리는 특유의 음침한 습관. 그냥 가지 말라고 하면 서로 쉽게 끝날 일을 도저히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합당한 이유를 스스로 알지 못한 탓에... 집 위치며 집세며 운운하며 나가지 않아도 될 이유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나가지 않았으면 하냐고. 아, 모른다니까. 자꾸 모르는 문제 헤집을 겁니까? 그거 서류 해결하는 데에 도움 돼요?

 

제 머리나 벅벅 긁으며 까사 본관의 헤드헌터 집무실 문을 열었다. 그래요, 고민할 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 대략 그런 편의주의적인 논리로 다시금 이 이야기를 덮어 버린다.

덮지 말고 조금만 더 고민했으면, 만병 통치약인 셈 칠 만한 아주 명쾌한 답은 있었을 지도 모를 텐데도.

 

 

 


 

 

 

2006년의 여름날, 제대로 헤드헌터로써 자리를 잡아 여유가 조금이나마 난 나는 제대로 패트로누스의 이론에 관한 책을 여럿 정독해볼 심산이었으나. 그럼에도 27세의 나는 여전히 패트로누스에 성공할 수 없었다. 지팡이 끝에 희미한 빛이 나오는 정도는 용케 해내는 것 같지만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난 적이 아예 없었다.

 

"...아니, 대체 누굽니까? 이런 구조로 마법을 짠 건?"

 

이론 상으로, 시전자에게 있어 가장 행복했던 단 하나의 기억에 집중하며 시전해야 한다던데. 아니... 어느 분야 이론이건 왜 심화 분야로 들어서면 결국 돌아오는 결론이 사랑인가. 멀린이시여, 제발 이 억지 논리를 내세우는 인간들을 좀 혼내주세요.

마법 자체의 이론적 공부는 할 만큼 했다 본다, 내가 여태 이 마법에 실패하는 사유는 그냥... 저거겠지. 스스로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무엇인지 특정짓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각박한 사람이 되었지? 아, 그래. 여지껏 이 회고록을 돌아보면 바보라도 왜 이렇게 컸는지 알 만 하다. 그래...

 

끼익, 의자를 뒤로 젖히며 집무실 천장을 멀거니 올려다 보았다.

집무실 책상에 올려둔 몇 안 남은 양친의 사진이라던가, 지금도 집무실 밖에서 꺄르르 웃는 소리를 내는 애들이라던가. 혹은 곧 뭔가 일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며 (물론 첼로의 일이라고 본인은 딱 잡아 뗐다.) 자리를 비운 유니스라던가... 여러가지 방향으로 머리를 굴려본다.

 

 

 

호그와트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난 일, 솔직히 행복하진 않았고 당시에도 불쾌하기만 했다.

처음 특출난 성적을 받아왔던 일, 이 쪽도 다행이다 싶었지 행복과는 거리가 멀잖아.

 

처음 호그와트 동문들과, 비지니스적이지 않은 사적인 목적의 편지를 주고받은 일. 지금 와서야 그럭저럭 추억이라 삼을 만 하지만 당시에는 나 역시 일하는 감각으로 보냈던 기억이 나니 기각.

 

양친과의 각종 기억들... 아니, 이건 지금 와서도 조금은 추억 보정이 붙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은 객관적으로 어른으로썬 좋은 사람들이고 나도 제법 올바른 대우를 받아왔음은 맞지만 자식에게 있어 유일한 내 편이었을 부모로썬 썩 훌륭하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물론 유령 꼴로나마 한번 쯤 와주셨음 하는것도 사실이긴 한데, 나는 올바른 양친보단 나를 편애해주는 양친을 바랬다고 할까... 아무튼, 이런 복잡한 심경은 과연 출제자의 의도에 맞을 만큼의 행복이라 하기엔 어렵다고 생각하니 이것 역시 열외.

 

5학년이 되는 방학 때에 누구씨네 집에 찾아 갔다가 바다를 멀거니 보고 간 일. 행복인가...? 제법 선선했던 기억은 나지만, 행복보다는 만족감에 가까웠을 테니 이것도 아니고. OWL 혹은 NEWT의 성적... 전자는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고 후자는 일일히 기뻐할 상황이 아니었으니 다시 기각. 결국 내가 가르치거나 교류해온 다들 잘 커서 잘 지내는 일... 아니, 잘 안 지내잖나. 반 쯤은 지금 연락 끊어졌잖냐. 행복은 커녕 속만 뒤집히니 탈락. 그 외에...... ......

 

 

 

......애쉬와인더의 알 없는데... 지금 가서 사올까? 사와서 학술적 목적으로 아모텐시아라도 만들까?

아니, 사랑이면 된다매. 뭘 사랑하는 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고. 이 사회에 이상할 정도로 사랑의 묘약이 많은 이유는 결국 이거 아니겠어?

급기야는 극단적인 처방까지 내릴 뻔한 스스로의 이마를 꽈악 짓눌렀다. 이성을 되찾아라, 패트로누스의 작동 원리가 그저 사랑 뿐이었다면 세상 모든 10대 청년들은 대마법사가 되었어야 마땅하고, 이선은 연애점 좀 쳐준 걸로 대마법사들의 스승으로 이름 날렸어야 한다...

 

 

 

커피 한 잔 타오고 다시 고민하기로 한다. 참, 하루 시간 난다고 이런 거나 고민하는 꼴이 참 살판 나긴 했다 싶다.

타오는 길에 한네스와 일리를 마주쳤다. 욥, 원장님 하이~ 만난 김에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두 사람은 제일 행복했던 일이 뭐인것 같아요?하고 물어보았고.

 

"한 달 전에 그 누구지? 파랗고 하얀 사람 있잖아요? 그 분 오셨을때 딱 날짜가 맞아서 같이 파티했던 거요."

"아, 저도요!"

"그 사람 용돈도 많이 줬는데, 그지, 일리?"

"얼레, 그 쪽으로? 먹을거 많았잖아... 난 그래서 가끔 사탕 아저씨 오실 때도 좋아."

 

애들을 오냐오냐 키우지 마십시오 엘르씨, 이선씨 당신은 5년째 이런 취급으로 괜찮은 겁니까.

 

"원장님은요?"

"글쎄 말입니다...~ 추억이라 할 만한 일 자체는 여럿 있긴 한데, 행복한 일이 뭐였냐 물으면 잘..."

"에이 형, 원장님은 약간... 그거지. '저는 여러분과의 나날이 행복입니다' 라느니 하는."

"푸하하하. 야 똑같았다 방금."

"일리."

 

저거 누가 가르친거야? 난가? 아아니, 원장님은 행복이라느니 당신이 정말 소중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안 듣고 자소서로 듣는 분이시잖아요! 그야 저희가 이런 반응을 보이죠. 벽 짚고 쓰러지듯 웃기나 하던 한네스를 뒤로 하고 돌아가려 들었다. 매정한 발소리였지만 할 말이 없어진 원장이 자주 보이는 행동이라 둘은 딱히 아쉬워하진 않았고... 다만.

 

"그치만요 원장님-! 원장님은 진짜 이런 식이니까요!"

"그냥 언젠가의 사건인 셈 치고 넘겼을 일이 진짜 행복이었다던가 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파이팅!"

"우편함이라도 뒤져 보시면 어때요?? 원장님 맨날맨날 그거 열어보시던데!"

 

하고, 그의 등을 보며 그리 외치는 것이다. 네에네에, 손은 흔들며 보내준다.

 

 

 

둘을 보내주고 집무실로 들어섰다, 겸사 우편함을 한 차례 열어 봤지만 별 대단한 연락은 없었지.

커피를 한 모금 정도 마시고서는 책장을 여럿 뒤적였다. 프로필을 받아둔 사람들의 이력서라던가 약간의 사건 파일 정도가 주로 들어 있었고, 그 외에는 양친이 좋아했던 책 몇 권이나 앨범 정도가 있는 지독한 워커홀릭의 책장이다.

 

프로필을 하나씩 넘겨 보고, 사건 파일도 조금 들춰 보고. 이젠 내용을 외우다 못해 너덜너덜해진 책들 중 몇 권을 아예 책장에서 뺐다, 더는 못 읽을 만큼 헤졌으니 새것으로 사서 채워 넣어야지 싶다.

앨범, 이건 뭐냐면... 양친 사진 외로 사진 찍을 기회가 많아져서, 98년 독립 이후로 찍은 것들을 하나씩 담기로 한 것이 꽤 양이 많아져 앨범까지 사게 된 것이다. 움직이는 것도 아닌 것도 있으며, 가끔 누가 안부 연락때에 궁금해 하면 이 안에서 하나씩 선별해서 보내는데...

그러다보니 사진들의 절대 다수는 애들 아니면 나나 유니스, 가끔 놀러 오는 동문들 정도가 담긴 것이 대부분이었다. 배경은 까사일 때도 있었고 가볍게 관광 목적으로 밖에 나갔을 때에 둘이서 찍은 것도 있었다.

 

 

 

"아, 이거 오랜만이네."

 

꽤 옛날 페이지로 넘어간다. 1999년, 우리가 스물이 되었던 그 시절. 밤바다가 보고 싶다며 몇 년 전에 가볍게 주고 받았던 약속을 이행했었던가.

이 사진은 움직이지는 않았다, 광원이라고는 꽉 찬 달빛밖에 없었으나 수면에는 달빛이 길게 다리를 수놓듯이 내려 있다. 그 광경을 내다보며 즐거워하고, 나를 등지거나 마주보거나 하는 등의 풍경을 여러 장 정도 남겨 두었었다.

광원이 저것 뿐이니 사진 자체에는 색이 그리 보이지 않았다, 

 

 

"아하......"

 

거기서부터 다시, 지금에 다다르기까지를 한 장씩 넘겨보았다.

 

일전의 사진전과는 묘하게 달랐다, 그때엔 순전히 내가 당시를 겪지 못해 그런 거겠지 정도로 넘겼던 공감각이 이쪽 사진들에서는 꽤 선명히 남아 있는듯 했다. 날이 꽤 춥지 않았던가, 이 사진 조금 흔들려서 찍으면서도 '아, 이건 좀 아닌데'하고 생각했던 거지만 피사체가 꽤 마음에 들어서 놔둔 거였지. 기타등등.

이대로 애들을 앉혀놓고 사진에 담긴 일화를 소개하라면 한참이나 할 수 있을 만큼은 남아 있었다. 신기하네...

 

그러니까, 이건 경험의 문제인가?

엄밀히는 경험의 문제는 맞다,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기억과 감정이 유난스레 이 앨범을 소중히 지키고 있는 거니까.

이 때가 처음 바다를 본 순간은 아니다, 일전 5학년이 되기 전의 방학 때에도 한 번 바닷바람을 쐰 적이 있었고, 당시의 광경은 어느 정도 떠올려봄직 할 만큼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엔 목적이 바다가 아니라 바닷가 근처에 사는 어느 마법사이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바다에 대한 긍정적인 감상이 남은 계기는 그 때의 바닷가이긴 하겠다는 부분에서 내 안에서의 의미가 조금 달랐다. 

 

 

그렇다면 이 밤바다 사진에 담긴 기억과 감정을 행복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가?

...... ......

...대략, 비슷하지 않을까?

그나마 이것이 비슷하다 생각했다, 나는 당시에 본 밤바다를 최대한 연상하며 다시금 패트로누스를 시도했다. 사진을 보지 않아도 그럭저럭 연상되는 부분에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성공이라 생각했으나.

그러나 여전히도 지팡이 끝에 옅은 빛이 나오는 선에서 끝나고 만 것이다. 뭐야, 이것도 아닌가.

 

"알 수가 없네..."

 

좀 다른 시도를 해봐야 할 지도 모르겠네, 생각하며.

그렇지만 밤바다 사진 중 제일 잘 나온 것 두 장 정도를 꺼내어 책상 앨범에 담기로 했다, 이 기억으로의 시도가 실패했음에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아니, 원장님은 행복이라느니 당신이 정말 소중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안 듣고 자소서로 듣는 분이시잖아요! 


 

앨범을 뒤적이다가도, 새로 꺼낸 사진을 들여다 보며 조금 푸스스 웃기나 하고. 문득, 제 손을 펼쳐서 손가락 두 개로 사진에 찍힌 유니스를 가려보기도 했다. 그것만으로 사진에서 볼 것이 싹 사라져 보이는 것을 자각하고서는 손을 유난스레 책상에 턱 내려놓았고.

 


여행 가이드로서 같이 가자는 게 아니라, 단순히 릴리랑 둘이서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은 거예요. 안될까요?


 

 

 

창가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은 꽤 뜨거웠다. 결국 패트로누스 마법에는 여러 차례 실패하고선, 느지막히 아주 약간만 남아있던 일이나 마무리하기로 했다.

 

결국 그 날도 유니스의 귀가는 몹시 늦었으나, 그는 일하던 서류를 집까지 들고 와서는 거실에서 정리를 하며 그를 기다렸고. 어떻게든 굿 나잇 인사를 받아 내고서야 서류를 정리해냈다. '왠일로 방에 있지 않고?' 정도의 이야기는 들었던가 싶다. 결국 대답은 '그냥, 늦게 오신다~ 싶어서? 여기서 기다리는게 훨씬 보고 싶었던거 같고 그런 거죠.' 였다.

 

녹초가 된 그를 도와 용케 방까지 옮겨 놓고서는 나오는 길에, 한 번 그가 까무룩 잠든 침대를 돌아보았다. 그저 그렇게 멀거니 보고서는,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 나왔고. 그 사이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뇌리에 남을 법한 공감각을 야기하는 성질의 충동은 뭐라 부르는게 가장 적합할까. 바다를 생각하며 시전한 패트로누스가 실패했으니, 내 시야가 추억으로써 사로잡은 피사체는 결국 바다가 아니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 나는 이 충동을, 그리고 지금의 아주 당연한 일상으로 자리잡은 관계를 새로이 결론내리는 것이 올바르다.

 

"...아..."

 

탁한 소리나 내고서는 아예 문을 닫고 나왔다. 제 뒷목이나 벅벅 긁고서는 서류뭉치를 도로 제 방으로 옮겼다. 그 과정에서 종이를 두 장 정도 흘렸고, 그 탓에 서류의 순서가 조금 섞여서 다음날 약간 곤혹을 치른 건은 이젠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작은 트러블이다.

 

인간 불신에 염세주의, 사회성 페르소나까지 겹겹이 뒤집어 쓰고 있는 인간이... 제게 향해지는 호의가 그저 사람 좋은 성질의 호의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그제서야 제대로 선 순간이다. 이 시점에서 그에게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도 머글 사회의 병원에서 일에 몰두했을 어느 마법사는 관련하여 통 단어화할 수 없다는 양 상담을 들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유감스런 일이다, 누구에게든.

 

 

 


 

 

 

...이후의 일은, 자세히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까사 소속의 5세 아동 '일리 룬'이 인질로 잡혀 강제로 달그림자 기사단에 입단된 그는, 최대한 몸을 숙여 아이를 빼낼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려왔다. 그러나 호그와트 집결 만은 피하지 못했고, 그렇게 잠시 동문들과 강제로 재회한 후 각 수장의 부정을 꺾어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더불어 이 일련의 사건이 원체 달그림자 기사단의 사상을 극렬히도 혐오했던 그에게 얼마나 큰 낙인을 찍었는지는 더더욱 말을 얹을 필요도 없다. 적어도 서른살이 될때까진 그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테고.

 

그 특유의 철저한 악행 인지는 그에게 하여금 모든 결론을 미루게 하였다, 27세의 여름날 정리하지 못한 충동은 잔존하였으나 그는 여태 스스로 납득할 셈이 없다. ...뭐, 어느 사자들네 쉐어하우스에 상대가 냉큼 들려 갔을 때엔, 아무리 그래도 조금 초조해서 냉큼 빌미가 생기자 마자 뛰쳐간 건이 있긴 한데.

 

 

결국 스스로 납득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흐른다, 어느 마법사가 애 좀 챙겨 주라며 안개꽃을 냉큼 쥐여준 것만 아니었다면 이대로 더 미뤄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저 어중간한 추측이 정답이건 아니건 영영 외면하지는 말고... 조금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된 후일에, 그 시점까지도 나의 이 당연한 일상 속에 그가 있었다면... 그때 즈음엔 제대로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 하는 이야기.

 

길들여진 이상 어떤 방향으로든 책임은 져야 마땅했다, 설령 그 책임 속의 감정이 대등하지 않은 채 평생 이어진대도 그것은 상대가 염려해야 할 것이 아니다. 뭐... 답신 없는 편지를 결국 매년 써오긴 한 시점에서 그는 원체 일방적인 노력과 애정을 쏟는 인간이 아니었던가. 사람을 다루는 사람은 으레 그런 것이고, 몽블랑 체리 슈의 애착 방식이란 원래도 그랬으니.

 

 

 

-...결국, 단어로써 뭐라 정리하기로 했는가?

말해 뭐합니까, 굳-이 말로 듣고 싶으신 거라면...... 네, 알겠어요. 행복이나 친애와는 또 다르겠죠. 사랑과 그나마 가깝겠습니다.

 

 

 

 

 

"저, 릴리를 좋아해요."

 

되려 일방이 아니라면야 그로써는 이 이상의 결과는 없다.

 

"다행이네요, 저도 그런 것 같아서요."

 

 

상대는 오랜 시간 고민하며 겨우 말했을 텐데도, 되려 고민한 기간이 훨씬 짧을 그의 답은 몹시도 짤막했다. 제법 제 감정소모가 극심했을 유니스에게는... 유감을 표한다.

 

 

"...에, 아?"

"네?"

"저기, 잠시만요. 한 번만 더 말해, 주시면..."

"차근히 제 안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고 모든 일이 얼추 갈무리 된 후에, 당신 쪽에서 저를 어떻게 생각했건 단순히 친애 및 어쩌고를 제가 오인한 것이건 상관 없이 저는 당신을 어떤 방향으로든 책임지긴 해야 겠다는 생각을 모임 이전 즈음부터 조금은 생각하고 있긴 했습니다만 당신 쪽에서 먼저 물꼬를 틀어 주실줄은 저도 정말 예상 외거든요. 행복의 역치 이야기에서 제가 나올 정도면 아무래도 제 오해는 아닌 것 같죠? 고마워요, 사랑해요. 제 맘 알죠? 모르니까 이런 말씀 하신 거겠지만."

"아니아니 그렇게까지는!!!"

"더불어 오해하시기 전에 미리 말할게요, 제가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거나, 사람이 좋아서 받아준 것 같다거나, 사랑 고백을 또 친애의 어쩌고로 오인했다거나 하는거 결코 아니니까요. 전 제법 진중히 답했을 셈입니다만..."

"...에!??"

 

변명과 사유가 좌르륵 나오는 꼴에 영 어벙히도 굴길래. 결국 그는 진중할 셈이었던 기가 팍 풍턴 터지듯 새어버렸다. 하하, 아하하!

울먹이기까지 하던 상대는 아주 당황해서는 눈물도 쏙 들어간 양 보였다, 그제서야 그는 웃음을 그쳤다. 훨씬 보기 좋잖아요, 덧붙이고서는 조금 몸을 숙여서는 시야를 마주했다. 앨범에 따로 빼 두었던 밤바다가 연상되는 시야였다, 그는 이 색을 제법 좋아한다. 아니지... 꽤 사랑할지도 모르겠다.

 

 

"하하아...... 자, 구질구질한 이야기 빼고 이야기할게요. 저 말이죠, 다른 곳의 어느 번듯한 연인들마냥... 아주 아름답고 낭만적인 사랑까진 아마 못 할거에요. 언젠가는......같은 당장 확실하지 않은 이야기는 괜히 약속드리지 않겠습니다."

 

여전히도 그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저 강렬한 사랑같은 편리한 말로 정리하면 되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스물 일곱의 우리는 고작 호그와트에서 벗어난 것만을 영광 삼아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고, 여전히도 이 태동의 시대 속에서 우리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어서야만 한다 생각한다.

사랑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처방대로 약을 쓰지 않으면 사람은 썩게 되어 있으니 이 감정만을 남용해선 안된다.

더불어 그는 여태 그 자신을 용서도 안 했는데 저런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입에 담지 않겠다.

 

그럼에도 그 시대 속에 홀로 서지 않은 채 서로 기대어 애정하며 살만한 타인을 고를 권리가 그에게 있다면,

 

 

"...그래도, 정말 저로 괜찮으시다면야... 부디 얼마든지."

 

 

그 자신의 존재만으로 행복일 수 있다는 데에 나는 결국엔 이해를 갖기로 했다. 어찌 보면 공감과도 닮았다, 나라고 상대가 하루아침에 뭔가 다른 꼴을 하고 나타난대서 내버릴 성정인가? 나는 그저 타인과 스스로에게 잣대를 다르게 둘 뿐인 자기관리의 화신이었을 뿐이다.

 

사랑, 사랑, 그 놈의 사랑!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가장 도드라지게 남겨져오며 패트로누스의 재료로까지 일컬어질 만큼 대대로 가장 강한 마법이라 그러는 이 존재로써 그는, 그리고 나는 변해가며 지금에 다다랐음을 인정한다.

과연 양친은 현명했다. 나는 그가 없다 해서 죽거나 본질이 흔들릴 만큼은 하지 않을 것임에도 그의 존재가 내게 있어 필요불가결한 타인으로써 자리잡았음을, 이제서야 제대로 결론짓기로 한다.

 

바람은 선선했다. 잠깐 나오게 할 셈이었던 것이 이야기가 커졌으나, 이제는 이런... 상정 밖의 소동도 적당히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은 그는 속이 시원했다.

 

 

 

분명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용서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 때까지도 우리가 여전히도 이 자리에서 기대어 살며 불가결히 남을 수 있다면, 그 때엔 자신있게 내가 다시 이야기를 하자.

 

그는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더불어 그 결과가 결국 올바른 방향일 것임을 신뢰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 뒷이야기를 펼쳐보아도 좋다.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따위의 진부한 결말까지도 그는 얼마든지 써내려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