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겨울.
2024. 4. 16. 17:35

 

 

 

 

 

 영국의 심장부인 런던은 혼잡하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하늘 높이 닿을듯이 여럿 서있는 첨탑과 성당처럼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 등등을 멀리서 내다 보면 마치 도시 전체를 건물들이 내려다 보는듯한 시선마저 느껴진다.

그 시선에서 한 걸음 벗어나, 기묘하게 살찐 검은 고양이의 뒤를 쫓는 어린아이가 아니고서야 아무도 찾지 않는 가게의 벽 너머로 들어서면. 그와는 전혀 다른 마법사들의 세계가 있다. 언뜻 보기엔 바깥과 다를 바 없이 사람이 사람과 모여 웃고 바삐 어디론가로 향하는 모습. 조금 더 자세히, 관심있게 들여다 보고서도 도구나 사상의 차이가 있을 뿐인 그저 사람이 살아가는 광경 뿐인 세계에. 누군가는 살아왔을 테고 누군가는 초대받았을 테다.

 

 

그 세계 안에 우뚝 선, 주위와는 달리 하얀 페인트칠을 해 혼자 눈에 띄는 2층 짜리 페더럴 스타일의 저택에 최근 호그와트에서 방학을 맞아 돌아온 슬리데린의 학생이 돌아온 참이었다.


페더럴 스타일의 심플한 디자인의 저택이라 해도 3인 가구가 살기에는 큰 편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서 살아왔던 몽블랑에겐 문제되는건 아니었다. 되려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선호하게 된 사유 중 하나였다. 사람의 눈 앞에 보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도 그다지 가깝지 않고,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인기척 소리에 안심하는 정도의 거리감.
그는 그것이 좋았다, 그래서 이 방에서 책을 읽으며 그 소리를 간간히 듣는 것이 좋다. 책을 좋아하는 취향은 어쩌면 이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겠다.


 


 



"블랑~~~ 오늘은 엄마가 재클러의 잡화점에 가서 리모델링 준비를 도와드릴 참인데, 혹시 같이 갈래?"
"그래! 같이 가자. 아빠도 같이 갈거란다~"


아침 식사로 나온 빵과 스프를 다 먹었을 때에 들은 말이었다. 먹으면서는 서로의 안부와, 앞으로의 장래를 기대하며 즐거운 이야기만 하더니 이렇게 봉변을 맞는다. (아마도, 그들도 나름의 양심에 따라 먹을 때엔 건드리지 않았을 지 모른다.)
들어보렴, 블랑. 재클러 부인 댁의 아들이 말야, 벌써 몸을 뒤집을 수 있지 뭐니! 얼마나 대단하니? 아, 물론 우리 블랑이 천 배 만 배는 더 대견하고 자랑스럽지만 말야! ...하며, 금세 자식의 앞에서 남의 이야기를 꺼내고 만다.


"...갑자기요?"


무슨 그런 말을 밥 다 먹고 일어나려 하는데 하십니까? 집이라고 머리에 힘을 푼 탓에 미간이 찌그러진게 선히 뵌다.
식사가 끝난 후 식기를 정리하는 사용인에게 제 컵과 그릇을 건넨다, 건네는 손에서 잠깐이나마 뿌득 하는 소리가 났을 지 모른다.

평범한 학창 시절의 자식을 둔 집안의 아침 식사 미담으로 보이는 현 상황의 뒷면을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발 좀... 철없이 살지 마십시오, 두 분 다......'

 

 

몽블랑은 착한 아이인 척 하는 아이이다.

 

원래의 슈 일가는 기존의 순혈주의자들의 교과서적인 이미지 그대로... 그러니까, 푸른 피에 새겨진 정통성과 사회적 이점을 무기로 마법부의 고위직에서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며 생산적인 활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 순혈 마법사들의 가계 속에서. 몽블랑 일가는 돌연변이 같은 존재였다. 몇 세대를 걸쳐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며 살아갔고, 그 보람 자체로부터 삶의 가치를 찾아내는 부류의 인간들.

그들이 쌓는 명예는 결코 자신들의 푸른 피를 내세우지 못했다, 되려 자신들이 순혈의 마법사이건 어떻건 상관 없다는 듯이 행동하며 푸른 피의 힘을 깎아내리기만 하기 일쑤. 대대손손 행해온 권력 놀이를 자기들이 다 청산이라도 하겠단 양 그들은 끝없이 자애로웠고 또한 평등하려 애썼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새로운 순혈의 핏줄이면서 제법 유능한 몽블랑의 어깨가 쓸데없이 무거웠던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집안 어르신들이 저희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당신들은 글렀댑니다. 그러니 당신들을 밀어내고 저더러 빨리 크라 그러덥니다! 얼마나 집안 사정 생각 안 하고 사셨음 대놓고 저한테 그런 말을 하시겠습니까?

(추후 그는 스스로 되짚길 스스로가 올바른 판단을 한다고 오해하는 아이에게 어르신들의 이러한 언행은 바람직하지 않았다고.)

 

 

'제가 기어코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하게 호그와트 졸업까지 해내서 그 늙은이들한테서 우리 자리 안 뺏기게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정말이지......!!'



그런 부모들 밑에서 태어난 제 위신을 중시하는 순혈의 아이는... 어떤 시각으로 보자면 별난게 아니라 평범한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혹은 권력자 특유의 악습을 끊을 수는 없다며 부모를 좌절시키려는 역경일지도 모르고, 그들의 밑에서 배웠음에도 여전히 마음이 새까만 특별한 아이일지도 모르고, 정말 나쁜 사람들의 도구같은 것일지도 모르고.
알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역사만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평가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현재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아이고, 블랑. 그래, 아침부터 이런 말을 갑자기 해서 미안하구나. 이런 큰 일이라면 며칠 전부터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글쎄, 재클러 부인께서 우리에게 일을 숨기신 탓에 우리도 아까 전에 알았단다."
"네게 조금 귀찮은 일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생각해보렴. 재클러 잡화점의 부인께선 지금 몹시 아프신 상황이시잖니. 힘들때엔 서로 돕는 것이 도리란다."
"그래, 더불어 잘 다녀오면 엄마가 맛있는 애플 파이를 구워줄 건데. 어떠니? 네가 좋아하는 밀크티도 설탕을 한 개 더 넣고 차갑게 해서 내어줄 수 있어!"


...하아, 하다못해 나에게 소홀한 사람들이었으면 정면으로 싫어할 수라도 있었는데.

와중에 잠시만요, 어머니. 제가 밀크티를 좋아했나요? 물으니 대답한다. 그럼, 네게 밀크티를 주었을 때가 가장 얼굴이 좋았는걸? 너는 싫어하는 것이 참 많지만, 그런 만큼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도 많거든. 몰랐니, 블랑?

전혀 몰랐습니다만... 으응, 너는 원래도 너 스스로에게 소홀했지, 그래서 엄마 아빠가 대신 봐 주고 있단다. 대꾸하며 그저 화사히 웃는 낯엔 한숨밖엔 더 나오지 않는다.

 

그래, 모든 팔자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몽블랑은 부모를 싫어하지 않았다.

불호 표현이 특히 확실한 그에게 있어 '싫지 않다'는 약한 긍정과 비슷했다. 모든 사람은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스스로를 치켜 세우려는 시커먼 속이 있으며, 그것을 숨기는 법을 배우는게 보통의 어른이 되는 수순이라 여기는 그에게 있어... 그의 부모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작자들이다. 그런 그들이 싫지 않을 정도면 이미 먼 강을 건너버린 거지.

 

 

'못 이길 싸움은 시작도 하지 말아야해...'

 

 

사용인이 건네준 얼그레이 티를 한 모금 마시며 몽블랑은 계산을 돌린다.

 

재클러 잡화점은 이름이 수수해서 그렇지 이 동네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재클러 부부 중 남편 쪽은 마법부와도 어느 정도 인연이 있고, 더불어 운이 좋다면 그들의 친척인 유드 진 ~현직 오러~ 도 올 지도 모르지.
두 사람은 평소에도 이런 활동을 자주 하니 지금 마치 뒷 산에 산책이라도 가는 듯한 분위기로 말하고 있지만... 분명 마법으로 큰 공사를 해야 할 것이고 손도 많이 가겠지. 이런 공사현장엔 필히 시선이 몰린다.
리모델링 후 개업 소식 자체도 신문에 실릴테니, 이 활동은 나가 두어서 손해 볼 게 없을 것이다. ...라고,

 

'가자'는 방향에의 계산이 다 돌아갔다. 사실 날씨가 끔찍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이유를 짜내기 때문에 '가지 말자'는 결론은 잘 나오지 않는다, 몽블랑은 제 부모로부터 거역하는 대신, 제 부모의 행적과 명예를 제 것으로 취해 완벽해지는게 낫겠다는 저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있고 내게 좋은 소문이 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손해볼 것이 없다 생각하는 편이다.

꼭 마음 속까지 착하고 선해야만 좋고 인간으로 완벽히 자라는건 아니거든요, 좋은 사람인 척 의태하는 것이 바로 사회성이고 어른이지 않습니까. 그 김에 제 잇속도 챙기면 더 좋은 거고요. 태어나면서부터 글러먹었다고 나이 먹어서까지 역경으로 역사에 남진 않겠다 이겁니다.

어릴적 어르신들로부터 부모를 대신한 기대를 받아왔을 무렵부터, 그들에게 자신이 함부로 대해지지 않도록 완벽을 위장하기 위해 해온 짓인 탓에... 지금은 사실상 몸에 관성처럼 남았다. 덕분에 반사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양 항상 득달같이 타인을 항상 시야에 두는 버릇이 생겼으니 더더 팔자는 꼬이게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그의 목표에 있어선 잘 된 일이다.


"...애플 파이에도 지난번의 것에서 과일을 조금 더 넣어주세요."
"그럼! 얼마든지, 우리 사랑하는 블랑. 우리는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단다."
"네가 호그와트에 가고 부터는 집에서 명절을 보내는 일이 적어졌지, 재클러씨께 새로운 종의 차와 책을 부탁드려 놓았단다. 집에 돌아오면 함께 티파티를 하자꾸나."
"그래, 오랜만에 집에 온 너와 시간을 보내야지! 내일은 아무데도 가지 말고 우리끼리만 지내자꾸나."
"호그와트에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들었어, 그런데도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해. 우리가 조금 귀찮지? 그래도 엄마 아빠는 네가 세상 구경을 했음 좋겠다 생각한단다."

 

 

그렇지, 세상 구경이라 하니 생각 났단다. 엄마 아빠가 슬슬 바깥에도 활동 범위를 넓혀 보려고 해. 너도 학교에서 만났겠지만... 세상엔 마법사들이 아닌 머글들의 세상도 있잖니? 그들 중에도 누군가는 도움을 필요로 할 거야, 그러니 그곳에도 우리는 가보고 싶구나.

운운, 몽블랑에게 있어선 정말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저희에게 머글 세상에서의 명예같은건 필요 없는데도 말이죠, 계산 굴러가기 힘들게 왜 자꾸 손 밖으로 나가십니까......

그렇지만 어떻게 말해도 결국엔 강행할 사람들인걸 알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만다. 제발, 국제비밀법령과 머글 세계 나름의 기부 관련 법이 철저하길 바랍니다. 이 사람들을 조금만 합법적으로 말려 주세요. 제 팔자가 그만 꼬이게 해 주세요.

 

 

"블랑은 관심 없니?"

"일단 지금은 제 학업에 집중하고 싶어요."

"싫다는게 얼굴로 보인단다 블랑. 그래... 엄마 아빠가 먼저 해보고 올게."

"그래도 기왕이니까 머글본 친구들한테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고 엄마아빠한테 들려줘야 하는거야, 알겠지? 그 친구들이 엄마 아빠보다 훨씬 훨씬 그 세계에 대해 잘 아는 거라고."

"아, 네에...~ 그래서 저거 나간다 하시지 않았나요?"

"아아, 가야지 가야지."

 

 

티팟을 완전히 정리하고는 그제서야 다같이 테이블에서 일어선다. 먼저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는 두 사람을 보내곤 홀로 제 2층의 방으로 향하는 그는.

기대와 경탄으로 가득 부풀어 오른 두 사람의 모습을 멀거니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한숨을 쉬곤 제 머리를 벅벅 긁을 뿐이었다.

꽤 많은 것이 제 불평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놈의 완벽이 뭐라고 한 사람의 성질마저 철저히 제어하려 들까. 누군가는 이를 신념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기대라 불렀으며. 그 자신은 노력이라 명명하고 있다. 몹시 싫어하는 자들로부터 싫어하지 않는 자들이나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것인데 이것이 어찌 노력이 아니겠는가.

 

 

 그 노력에의 야망만으로 그는 위대한 마법사 멀린의 뒤를 잇는 슬리데린의 일원이 되었고, 지금에 다다른다.

그가 꺾이지 않는 한 그의 완벽은 건재할 것이고, 멀리서 보아 평범한 모범생과 다를 바 없는 그의 세계는 여전히 그의 것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