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49: 순찰기록

https://youtu.be/EFv2dJ8ZDC4

 

🔶 하지만 우리는 구텐버그처럼 꿈에 대한 노래를 계속 부를 겁니다. 결코, 멈추지 않을 겁니다. 뮤지컬이야말로 우리의 꿈을 인쇄하는 꿈의 인쇄기니까요.
-뮤지컬 <구텐버그> 발췌

 

 

 

서벅 서벅 물기 젖은 모래알이 밟혀 흐트러지는 소리가 난다. 해가 지평선에 걸쳐 곧 떠오를 즈음 시간에 그가 모래 깔린 땅 위를 걷고 있는 참이다.

나이 스물 먹고선 아침 일찍부터 주위를 패트롤이란 핑계로 산책 나갔다 오는 이 활동이 그에겐 당연한 것이다마는. 특히 요즈음엔 무리 이탈이나 타 위협에의 노출 따위로 보여졌는지 제법 우려를 사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젠 하지 말라는 양 규탄을 들었을 테다. 아침에 할 것이 그리도 없니?같은, 뭐 그런 규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실보다 득이 큰 선택이라며 한참을 뜻을 굽히지 않았더니 결국엔 오늘도 이렇게 잠깐 나와볼 수 있었다.

 

 

"후우."

 

 

엘 듯이 시린 공기가 땅에 그득히 내려앉아 있다. 제 날숨이나 볼로 손을 녹여보려 해도 그리 쉽게 되지 않으니 슬슬 어디 가서 장갑이라도 찾아와야 하지 싶다.

오늘은 날씨가 어떠려나, 올려다 보면 간밤에 이슬비를 한 차례 쏟아낸 구름이 조금씩 걷혀가고 하얀 하늘을 드리운다. 어제보단 조금 더 춥겠네요, 날씨는... 아마 이대로라면 맑으려나요? 지금이 동지를 지났는지 몇 월에 무슨 절기를 지났는지 살짝 헷갈려왔다, 그리고 그 학구열을 덮어둔다. 날씨 보는 부분으론 나 이상의 전문가가 있으니 이런 공상으로 바깥에 오래 노출되어 좋을 게 아마 없겠지.

 

대구 밖이라 이젠 눈이 와 줄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 눈도 안 오던가요, 이상하고 아쉬운 일이다, 꼭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왜 눈이 오지 않는지 이유가 참 궁금하지만, 기상 현상이란 원체 각종 통계들을 다 갖다두고 검증하여 분석해도 간혹 틀리는 분야가 아니던가. 통계는 커녕 지금의 기온도 정확히 모르는 내가 알아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날, 학교 옥상에서 방어선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부터 몇 주가 지났다.

구조되지 못 한 것이 썩 절망적이긴 하였으나 절망감에 전율해 무력해지기보단 역시나 또, 이번에도 머릿속에 퍼즐이 채워지는 게 먼저였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분명 식당 냉장고엔 식량이 꽤 남아 있었다. 바깥이 뚫렸으니 그들이 이동하면 학교는 조금 더 무사할 거니까 학교에서 며칠 더 버티려면 가능은 하겠지.

그렇다면, 나는.

 

제 이런 기질이 몹시 이질적이긴 했다, 혼란할 때에 비로소 빛을 발하는 자질은 과연 개화되어 옳은가? 데스매치에 잡혀간 사람이 알고보니 살인마의 재능이 있었을 때에 그는 그 재능을 살려 살아야 합니까, 재능을 죽이고 스스로를 해쳐야 합니까.

그렇지만 뭐. 결국엔 이 기질을 끝없이 살리면 지금의 상황에서도 모두를 지키고 더 나은 결말로 이끌 수 있을 테니까. 위의 질문에서 나는 일단은 당사자로써 일부 긍정하였다. 모든게 다 나아질 때까진 기꺼이 이런 기질에 의문을 갖지 말고 온전히 발휘하려 한다. 받아온 신뢰와 응원과 우려가 이윽고 나를 떠미는 참이니 서로간 윈윈이지. 예시가 조금 극단적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살인이나 뭐 그런걸 옹호할 의향이 있는 것은 일절 아니며 여전히도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할 방도를 모색 중이니 오해는 없길.

 

나는, 무사하고 운 좋은 탐정학과 일등성으로써. 다시금 더 나은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기로 맹세했다. 오로지 그만이 나를 인정하고 살아있다 인지케 하기 때문에.

구조될거란 희망에 차 잠시 가방에 집어 넣었던 메가폰을 다시 손에 쥐고, 다시금 저 너머로.

멀리서도 한 눈에 보이는 이정표로써 기능하려면 오늘도 온 몸으로 힘껏 앞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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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백색소음마냥 낮게 울리는 모종의 마찰음에 신중히 귀를 기울이던 차.

특별한 정처 없이 순찰을 위해 움직이던 발길이 폐상가 주위에서 멎는다. 아마도 여기가 오늘 지나쳐 갈 길목이었던가. 주말이나 저녁이 되면 북적북적 인파가 몰려 꽤나 혼란하고 또한 생기 있었을 상가 건물에. 이제 사람은 나 혼자였다. 깨진 창문에서 쏟아진 유리가 온 바닥에 흩어져 있어 밟을 때마다 바직 바직 소리를 낸다.

 

지나가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겠다, 하물며 여럿이 지나가게 되면 더 불안하다. 아마도 그들은 시력이 퇴화하지 않았던가, 그 반대 급부로 청력이 좋다는 추론은 몇 주 전부터 쭈욱 주장해왔을 터이다. 사실 자세히는 아직도 잘 모른다, 여전히도 정보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나라도 이 습성 정보 하나 얻겠다고 이래저래 시도하는건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아서...

 

 

'치워 둘까?'

 

 

도구가 없는 것은 아닐테니 모두가 이 길을 지나치기 전에 유릿조각을 치울 수 있으면 안전하겠지. 이런 불안요소를 발견하기 위한 패트롤이었으니 이제서야 옳은 사용처를 찾은 셈이다. 생각 했으니 실행을 위해 둘러본다. 어딘가의 가게 청소도구함이라도 열어보면 빗자루나 밀대 같은게 있겠거니, 이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런두런 둘러보고.

 

 

"아."

 

 

停滯.

악세사리 가게 입구 부근의 유릿조각이 사람 발 사이즈만큼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흔적을 사람 보폭 정도 간격으로 조사하니 과연, 이것은 사람이 걸어 들어간 흔적이다.

숨 죽여 기다려보니 멀리에서 바직 바직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고, 이를 인지하고 제 발 밑을 내려다보니 과연 흐트러진 흔적은 한 둘이 아니다. 아, 내내 들려오던 이 백색소음은 설마 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움직이는 발소리였을까. 어떠한 결론에 다다르니 천천히 등 살이 삐쭉 서고 숨이 멎을듯이 속이 시큰히 저려왔다.

 

 

"...... ......"

 

 

정체된 몸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두 손을 들고, 조용히 뒷걸음질로 상가를 빠져나온다. 타 생존자라면 협상이나 거래 내지 구조의 가능성이 있겠지만 상식적인 사람은 이 시간 이 상황에 악세사리 가게를 털지 않는다, 만에 하나 악의적인 타인이라 해도 상황은 곤란한데 하물며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라 가정하면 누구겠는가.

 

그래, 이 길은 포기하자고 말해둬야겠다. 아까 확인하고 온 시장 길로 돌아 가면 한시간은 더 걷겠지만 충분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으니까... 안전한 길로 가자고, 그렇게 이야기하자.

이정표로써의 일은 이렇게 한 차례 지나간다. 다행이지, 이로써 조금 더 다들 안전할 수 있겠어.

그래도, 언젠가는. 이정표가 필요 없는 모든게 괜찮은 세상이 와 주었음 좋겠는데. 탐정이 바쁜 세상보단 역시 탐정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더 낫지 않겠나…

 

 

폐상가에서 벗어나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지평선에 걸쳐 있던 해가 제법 높이 떠 올라 있었다. 겨울이라 안 그래도 해가 짧으니 아마도 슬슬 아침이겠네, 이젠 돌아가야겠다, 내 걱정이나 하다가 앓으시면 큰일인걸. 환자도 있고, 피로한 사람도 있고. 나까지 걱정거리가 될 순 없어.

 

모래알 밟는 소리밖엔 나지 않는 고요한 땅 위에 반향이라도 일으키는 양 기지개나 한 번 켜곤 발걸음을 돌린다. 그 짤막하게 내뱉은 단발마에 꽤 한숨이 깊게 쏟아지니 이윽고는 제법 상쾌했다, 시큰히 저리던 속이 어느 정도 내려갔다.

그래, 이러면 됐지. 한지아의 스트레스 관리는 딱 이 정도 수위로 이뤄지고 있었으니. 돌아가서까지 불안해하면 이래저래 걱정거리가 될 테니까 이거면 됐어.

 

저의 신념에 몸이 따라가지 못한지 어언 마흔 일 하고도 반나절째의 지극히 평범한 아침 광경이다. 그렇게 또 한번 마흔 한 일째 만큼 기꺼이 감내하게 된다.